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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1월 뉴스레터] 의미에서 문화로, 미술 속 체육에 관하여

작성자
황영호
작성일
2017.01.20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2805
내용

의미에서 문화로, 미술 속 체육에 관하여

 

 



  근현대적 의미로서 미술이 등장한 건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출현하면서 부터였다. 그렇다고 이전에 미술 행위가 존재하지 않은 건 아니다. 벽화, 조각과 같은 표현 방식은 인류의 탄생부터 삶과 분리된 적이 없다. , 르네상스 이전까지 미술적 행위는 일종의 기술로 보는 입장이었고 르네상스 출현 이후 드디어 예술가와 예술작품이라는 개념이 적용되었고 예술가는 군주, 귀족, 성직자 및 부호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문화를 이끌게 되었다. 더불어 예술품을 소유하여 자신의 권위를 세우고 스스로 역사의 일부가 되려는 인간의 욕망도 문예 부흥을 이끌어낸 배경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이렇듯 예술이 신화, 역사, 종교 등 시대정신과 밀착되면서 자연스레 예술을 관할하는 제도적 틀을 비롯하여 당시 활성화 된 상술이 결합하면서 점차 예술은 하나의 사조로 부풀어졌다. 한편 미술이라는 개념이 뿌리내리기 전 사람들은 인체를 그림과 조각으로 모방하는 것이야말로 정신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핵심이었다. 왜냐하면 신학적 관점에서 세계는 이미 완성되었고 이렇듯 완결된 세계를 모방하는 것이야말로 아름다움을 지속시키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기원전 4세기 그리스에는 미론(Myron)이라 불리는 위대한 조각가가 살았다고 한다. 당시에는 예술작품의 개념이 부재했기에 작가의 서명을 남기는 경우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미론을 비롯한 몇몇 인물은 신화처럼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물론 현재까지 남겨진 미론의 조각은 로마인이 재현한 모작(replica)이지만 앞서 소개한 것처럼 그리스 문명의 유산을 모방하는 활동 역시 정신을 잇기 위한 중요한 덕목이었을 것이다. 모든 천재가 그러하듯 미론도 시대를 앞서간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대표작 <원반던지기>는 가장 극적인 인체를 보여주는 훌륭한 주제 중 하나였다. 당시 그리스에서는 올림픽 경기 종목을 조각의 주제로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예술은 시대를 막론하고 문화, 풍습, 사상을 토대로 생성되는 것만큼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당시와 현재를 비교하자면 예술과 체육은 제도적으로 가까운 것에 비해 현실적으로는 꽤 멀어진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미론의 <원반던지기>는 그 오랜 시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구고대미술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작가의 의도와 표현에 있다. 르네상스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사실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미술은 고정된 형식과 의미의 관계에서 벗어나 주관적인 작가관을 창작에 투영할 수 있었다. 영국 미술사학자 케네스 클라크 경(Sir Kenneth Clark)에 따르면 미론은 투철한 지성으로써 운동경기의 힘의 영속적인 패턴을 창조했다. 오늘날까지도 운동경기 연구자들이 과연 그런 것이 실현 가능한가에 대해 논란하고 있는바, 순간 동작을 미론은 포착하여, 그것에다 카메오와 같은 완전성을 주었다.”(누드의 미술사, 224) 운동경기 장면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원천으로 우리가 그것에 열망하는 이유는 단순히 승패만은 아닐 것이다. 경기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원초적 몸짓, 문화화 된 야성, 일정한 규칙을 이용한 전략·전술, 마치 무용 안무나 무예를 보는듯한 신체 움직임 등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체가 없는 시뮬라크르와 다름없을 것이다. 서구조각사에서 인체 형상이라는 주제는 단지 정밀묘사가 아닌 살아있는 인체의 생동감을 더 강렬하게 표현하려는 욕망에 의하여 진화했다고 보았다. 더 나아가 과학기술의 융합을 통해 안드로이드와 같은 생명체를 창조하려는 인간의 의지도 반영하고 있다. 고대부터 인류는 피그말리온 신화로 엿볼 수 있듯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렇듯 인간형상을 재현하는 데에 있어서 모방적 측면을 넘어서 실제 움직임을 연상시키는 시지각적 효과를 만들어내려면 새로운 표현 방법을 고안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미론은 주어준 의미에 충실해야만 한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실제로 원반을 던지는 모습을 조각으로 보여줄 수 있는지를 발명한 역사상 최조의 작가인 셈이다.

 

 


 

  한편 한국미술 중 운동과 관련된 작품으로는 단원 김홍도의 <씨름>(18세기 말)을 곧바로 떠올리게 된다. 씨름하는 두 사람이 화면 중앙에 위치하고 주변을 둘러싼 구경꾼들의 왁자지껄한 모습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사실 씨름을 겨루는 두 사람의 모습은 특별히 긴장감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단원은 경기 장면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축제의 소란스럽고 익살스런 분위기와 기운을 담아낸다. 이어령은 장터를 두고 공연과 거래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곳으로 한국문화 고유의 흥이 나타나는 장소로 보았다. 한편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 화가 들라크르와(E. Delacroix)도 씨름을 연상시키는 회화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1861)을 발표한다.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은 구약성서 중 이삭의 둘째 아들 야곱이 장자권을 받지 못 한 뒤 형의 보복을 피해 도망가던 중 마주친 천사와 대결을 벌여 천사에게 축복을 받는다는 신화이다. 결국 야곱은 천사로부터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았고 이는 또 다른 신화의 시작을 예고한다. 이른바 신적 존재와 인간의 대결이란 주제는 르네상스 시대부터 많은 화가들이 즐겨 다루었는데, 특히 들라크르와는 나약해 보이는 천사의 모습에 비해 근육질 야곱의 신체를 강조한 점이 두드러진다. 미술비평가 미르조예프(N. Mirzoeff)는 위 작품을 두고 신화의 재현이 아닌 근대적 자아를 지닌 신체의 등장으로 분석한다. 초월적 자연을 인위적 문명이 극복하는 장면이자 더 이상 신의 영역에서의 삶이 아닌 개인의 주체적 의지로서의 삶이라는 니체적 관점의 근대적 인간의 모습을 엿보게 한다.

 

  20세기 전후 사진기술이 발달하면서 신체 움직임에 관한 미술가의 집착은 더욱 확대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을 기록·분석하려는 의지는 높이뛰기, 멀리뛰기, 달리기, 경마부터 발레리나의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요컨대 이와 같이 사진이라는 신매체의 등장은 미술뿐만 아니라 20세기라는 새로운 시대의 문명과 문화는 물론이고 정신과 육체를 장악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미디어가 발전할수록 스포츠는 함께 겨루면서 나누는 신체적 체험의 영역에서 시각적 스펙터클 영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21세기 이후 미술과 체육의 접점은 신체 재현에 집중하기보다는 문화적 맥락에서의 스포츠, 자본화 된 신체를 다루거나 마르크스주의를 토대로 한 반문명적 가치관과 공동체 문화를 주목하는 현상으로 좁혀지거나 펼쳐지는 다양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다소 거칠게 결론을 맺자면, 고전주의 미학 시대에는 모든 형상에 일정한 의미를 새겨 넣어 일정한 기호학적 상징체계를 형성시켰으며 현재까지도 그 흔적을 대부분 문화권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와 달리 동시대 예술은 문화적 맥락, 사회적 관계, 정치적 현황 등을 창작의 밑바탕으로 사용하기에, 스포츠 분야를 다루더라도 짜릿한 박진감, 환호, 좌절을 그리기보다는 사회 시스템, 미디어 정치학, 문화 이론 등을 참조하여 비판적 태도를 지향하는 편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이 등장하면서부터 시작되었고 후기 모더니즘 사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미술의 사회문화적 역할이 관람의 대상에서 비평적 관점의 문화 정치학을 실천하는 방식으로 전환된 점도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미술의 이 같은 변화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무조건적으로 동시대 미술의 실험을 지지할 필요는 없으나 이른바 예술이 무엇을 하는 지에 관한 질문은 전문적 지식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던질 수 있는 물음일 것이다. 세상을 향하여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차이를 가진 사람, 문화 등을 만나면서 스스로의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예술의 자세이자 삶의 태도일 터이다. 그래서 동시대 미술은 현실의 온갖 활동과 행태를 수용한다. 그것은 사회체육이나 단련장이 될 수도 있고 거대한 경기장을 전시장으로 활용할 수도 있으며 일시적이고 우발적으로 공동체가 만나는 장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오늘날 미술은 경계를 허무는 장치이자 다양한 분야를 서로 만나게 해 주는 매개체로 진화 중이다.

 

 

정현 (인하대학교 조형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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